사적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겠다. - 경주 문무대왕릉(慶州 文武大王陵)

현광영규 2015. 1. 1. 12:41

사적 제158호 경주 문무대왕릉(慶州 文武大王陵)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 해중(대왕암)

 

경상북도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육지로부터 200m쯤 떨어진 바위섬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제30대 문무왕(661-681)의 수중릉이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중앙의 대왕암 주변을 큰 바위(화강암)가 둘러싸고 있는데,

 네 방향으로 물길이 나 있어 주변 바위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적으로 물길이 나 있는 상태이나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튀어나온 부분을 떼어내어 물길이 난 가운데 공간을 약간 가다듬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육지에 '낭산'이라고 하는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다.

연구 결과 문무왕의 시신은 이 능지탑에서 화장되어 대왕암 주변에 산골하고,

대왕암 주변 바위에서 절리 된 큰 바위를 중앙의 빈 공터에 남북으로 안치시켜

장례를 지낸 형식적 절차를 가짐으로써 무덤(왕릉)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신라의 한 설화에, 문무왕이 그 아들 신문왕(神文王)에게 만파식적(万波息笛)이라는 피리를 주어,

문무왕이 죽은 후 바다의 용이 되었다가, 만파식적을 불면 용이 나타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들 신문왕은 바다에서 1.5km 떨어진 동해변에 부왕을 기리는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절의 금당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용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해수욕장은 해돋이가 일품인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1231일과 다음해 11일 사이 해맞이 대축제가 열린다.

 

 

 

 

 

 

 

 

 

 

 

 

 

 

 

문무대왕릉과 가까운 곳에 감은사지가 있다.

사적 31호로 문무대왕이 왜적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하여 신문왕2(682)에 완공되었다.

감은사지 금당 밑으로는 바닷물이 통하게끔 설계되어 있는데,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참고 : 문화유산정보/문화재청, 네이버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