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담장

문양이 아름다운 한국의 꽃담(2)

현광영규 2014. 7. 29. 22:15

 

꽃담 

각종 무늬로 치장하여

아름답게 쌓은 담을 꽃담이라 하는며

꽃담은 대부분 벽돌로 만들어지는데,

문양을 넣기 위해 특수 제작된 벽돌이 많이 사용되었다.

담장, 담벼락, 합각, 굴뚝에

무늬로 장식한 것을 통틀어 꽃담이라고 하며,

담장 쌓으면서 깨진 기왓장이나

돌을 박아 넣어 장식한 것부터

꽃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문헌에는 회면벽(繪面壁), 회벽화장(繪壁華墻),

화문장(華紋墻, 花紋墻), 영롱장(玲瓏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어를 사용하여 화담, 화문담, 화초담,

무늬담, 그림담이라고도 한다.

 

 

보물 제1293호 공주 계룡산 중악단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신라 때 5악의 하나로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중악단 둘레에는 꽃담으로 되어 있다.

 

 

 

 

 

 

 

 

명승 제40호 담양 소쇄원 (潭陽 瀟灑園)

 

담양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1503-1557)는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정원인 소쇄원을 지었다.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자연스러운 담이 있는데 ‘애양단’, ‘오곡문’,

‘소쇄처사양공지려’의 석판과 목판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사적 제257호 서울 운현궁(서울 雲峴宮)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이 살아던 집으로,

 고종이 태어나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 자란 곳이기도 하다.

 흥선대원군의 집과 1910년대 새로 지어 덕성여자대학 본관으로 사용하던

서양식 건물을 합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전라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22호 권희문가옥(權熙文家屋)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2호 어서각(御書閣)

 

어서각은

 임금이 직접 쓴 글씨를 보관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추담 장현경에게 하사한 영조의 친필을 보관하기 위하여 정조 23년(1799)에 세웠다.

장현경(1730∼1805)은 영조 28년(1752) 과거에 급제하여

 춘추관기사관 겸 홍문관박사를 시작으로 춘추관, 기주관, 편수관 등을 역임하였다.

어서각에 보관되어 있는 글씨는 영조가 직접 쓴 것이다.

영조 39년(1763) 동짓날에 조정대신들을 불러 흰죽과 꿩고기를 내리자,

성은에 감복하여 율시를 지어 올리니 왕께서 크게 기뻐하시어 시를 지어 내려주신 것이라고 한다.

 장현경은 이 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서각을 짓고 이곳에 보관하였다.

 

 

 

 

 

 

 

 

 

 

등록문화재 제213호 정읍 진산동 영모재(井邑 辰山洞 永慕齋)

 

이 건물은 근대기 재실 건축으로

대문간채와 재각(齋閣)이 ‘二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김덕홍의 효행을 기념하는 명정판이 대문간채에 걸려 있다.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26호 석파정(石坡亭)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원래는 김흥근의 소유였던 것을 고종 즉위 후 대원군이 사용하였다.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개인소유 건물이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7호 여주해평윤씨동강공파종택(驪州海平尹氏東岡公派宗宅)

 

 

 

 

 

참고 : 문화유산정보/문화재청, 네이버지식백과